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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3

5시 반에 일어나 씻고, 6시에 Interlaken West 역에 도착했다. coop, k-kiosk, 아시아 마트 등의 시설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적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열 명 중 여덟 명이 우리처럼 융프라우에 가려고 일찍 일어난 한국인 관광객이다. 기차는 6시 20분에 출발한다.

그린델발트로 가는 기차.

비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놀랍지도 않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그린델발트 역에서 번호표를 뽑고, 스위스패스와 독일에서 프린트해 온 동신항운 쿠폰을 이용해 곤돌라 무제한 이용권과 피르스트 액티비티 4개 중 2개를 할 수 있는 티켓을 결제했다.

8시에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가는 곤돌라를 탑승했다. ‘융프라우—유럽의 정상.’

First

곤돌라를 타고 피르스트에 올라가자 빨간 얼룩소 모형이 반겨준다.

계속해서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식물 종류와 색깔이 달라진다.

전망대가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한 관광객들의 줄에 끼어 본다. 우리 앞 순서의 한국인 모자와 서로 사진을 찍어 준다.

순간을 즐기느라 사진은 없지만 피르스트에서 액티비티를 했다. Flyer(짚라인 같은거), Glider(엎드린 자세로 타는 짚라인 같은거), Mountain cart(산 내려오며 타는 카트), To어쩌고 이름 까먹은거(전동 자전거?) 이렇게 4가지 액티비티가 있었는데 우리는 Glider와 Mountain cart를 탔다. 꼭대기에서 액티비티를 하고 산을 좀 내려오면 중간역에서 다시 곤돌라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오고 그런 식이다.

Mountain cart는 산의 내리막길을 카트 타고 내려오는 건데,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길은 넓어서 떨어질 일이 없지만 울타리도, 안전장치도 없어서 자기가 절벽으로 운전한다면 그냥 떨어져 죽는 거였다. 그래서 타기 전에 온라인으로 무슨 동의서 같은 것을 쓰게 한다. 경치가 좋고 시원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른 시간이라서 웨이팅이 짧았다.

그 다음 탄 Glider는 멀리서 언뜻 보면 패러글라이딩하는 것 같은데 사실 기구가 짚라인처럼 줄에 달려 있어서 그냥 놀이기구이다. 4명이서 같이 탄다. 한 시간 반 정도 줄 서서 기다렸다. 안 추웠는데 기다리다 보니 추워져서 타기 직전에는 높이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정면으로 맞닥뜨릴 칼바람에 대한 두려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높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냥 새의 시점을 체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시 곤돌라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내려온 듯하다. 우리가 일찍 와서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곤돌라가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태평하게 좌석 위에 일자로 누워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신선놀음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린델발트 쿱에서 초코칩쿠키, 음료, 빵을 사서 경치를 구경하며 먹었다.

Eigergletscher

그리고 또 케이블카 티켓을 끊어서 아이거글레처 역에 갔다.

산악열차를 타기 전 터미널 밖으로 나가 보았다. 눈이 미끄럽고 푹푹 빠져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온통 하얘서 눈이 부셨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산악열차에 탔다. 좌석이 널널하고 편안했다. 이 길을 뚫는 데 몇십 년이 걸리고 몇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Jungfraujoch

그리고 가장 고대하던 동신항운 공짜 신라면. 이거 주는 곳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라면으로 이어져 온 한국→스위스 관광의 역사. 이 관계가 궁금해진다. 그 안에서 동신항운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어쩌다 ‘유럽의 정상에서 한국인에게 공짜 라면을 주자’ 라는 위대한 사업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한국인에게만 컵라면 공짜… 한국을 사랑한 스위스 철도원
융프라우에서 컵라면을 외치다
”만년설과 한국 컵라면, 찰떡궁합이죠”

신라면은 늘 그렇듯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융프라우 투어 코스를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종이 지도도 주고, 휴대폰 앱도 있다. 도중에 여기가 어딘지, 끝까지 몇 분 남았는지 표지판도 엄청 많이 있다. 여러모로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와 비교된다. 근데 너무 정보를 친절하게 많이 제공해주고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 지정해준다.

본인이 스위스 산 지리를 빠삭하게 아는 전문가이거나, 모든 가능한 지출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부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돈과 체력을 절약하기 위해 따르는 검증된 수단과 루트에서 벗어난 여행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행의 자유도와 선택의 폭은 좀 떨어진다. 그래도 몸과 마음이 편하고 즐겁긴 하다.

Discover…? 무엇을 디스커버 하라는 것이죠? 아무 것도 없잖아요.

세상이 렌더링되다 말아서 내가 서 있는 구조물 외에는 전부 null 이다.

얼음궁전. 얼음으로 된 조각들이 있다. 벽과 바닥의 얼음은 안 녹게 처리를 해서 그런지 질감이 무척 반들반들하고 이상하다.

융프라우 투어를 마치고 허기진 관광객들을 사로잡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에 린트초콜릿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각각 두 알씩 봉지에 담았다. 나는 말차 맛과 알코올이 들었다는 Irish cream맛을 선택한다.

다시 열차를 타고 아이거글레처로 간다. 검표원이 작은 초콜렛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린델발트역의 기념품가게에 들어갔다. 기념품들의 퀄리티가 모두 뛰어나다. 저 소 모형이 유명하나 본데, 가판대 위 모니터에서 장인이 나무를 정성스레 깎는 영상을 보고 나니 지나치려다가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가격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인터라켄으로 돌아와서 교회 하나를 구경하고, 빵과 초코칩 쿠키와 라면 따위밖에 안 먹은 것을 참회하는 의미로 에서 샐러드용 야채를 구매해 숙소로 돌아온다. 이 시간대 쿱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쿱이 그나마 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모든 상품이 독일보다 비싸다. ‘가성비’ 가 이번 스위스 여행 내내 물건을 고르는 가장 지배적인 기준이었다.

스위스 거리에는 물을 이용한 조형물들이 많다. 저 동그란 금속 구체의 표면에도 물이 흐르고 있다.

저녁으로 샐러드에 소스를 뿌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