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일어나 도미토리의 다른 여행객들이 깨지 않게 숨죽여 나갈준비를 하고 6시 반에 조깅을 나선다. 둘 다 조깅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산책으로 끝났다. 숙소 근처에 흐르는 Aare 강을 따라 뛰거나 걸었다. 스위스의 강물은 빙하가 녹아서 에메랄드 색을 띈다고 한다.
마트에 들러서 빵과 과자, 소세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주방에서 어제 저녁에 먹고 반절 남은 샐러드와 소세지를 후라이팬에 구워 테라스에 앉아 먹는다. 창밖으로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들이 부럽지 않다. 식사 후 Interlaken Ost역에서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간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 루체른 선착장으로 간다.
루체른 유람선
루체른에서 비츠나우로 가는 유람선 위에서 아까 산 마트 빵을 음미하며, 문득 도시의 자연과 건축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느꼈고 그 자연스러움이 문득 이상해졌다. 베를린, 티라나와 스코페에는 부재했던 자연스러움이었다.
왜 스위스는 알바니아나 북마케도니아와 달리 이리도 자연스러울까? 망가진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내가 최근에 갔던 베를린, 티라나, 스코페는 전부 한 번 이상 망가졌다가 다시 만들어진 도시였다. 그 도시들에 비해 스위스는 망가진 적이 없었다.
스위스 역사에 대해 아는 게 없긴 하지만, 내 생각에 스위스는 비교적으로 나라의 비극이랄 게 적었던 것 같다. 챗지피티에게 물어봤을 때 흑사병, 내분, 자연재해밖에 안 나왔다. 그 흔한 공산주의 독재 역사, 잔인한 침략과 지배와 탄압 역사, 모든 것을 쓸어버린 전쟁이나 핵폭탄… 같은 게 없었다. 세계대전 때 중립국이었고 스위스 경찰이 나치 독일에 순응해서 침공도 안 당했다고 한다.
Rigi
산을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기차를 타고 ‘산들의 여왕’ 리기산을 올랐다.
정상까지 차를 타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정상까지 3정류장 정도 남긴 Kaltbad-First 에서 내렸다. 고속도로 휴게소같이 편의시설이 있고, 공원과 무려 수영장까지 있다.
그리고 정상인 리기쿨름까지, 또는 그 다음 역까지 하이킹을 해서 가기로 했다. Alltrails 앱에 나온 트랙으로 가고 있었다. 선탠의자에 누워도 보고, 소도 보고, 교회와 산장들도 보고, 경치도 봤다. 우리의 앞에 펼쳐진 산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가느다란 하얀 길을 내다보다 불현듯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상이 목표라면 오르막길이어야 하는거잖아. 뒤늦게 앱을 확인하자 2시간이 넘게 걸리는 트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막차를 놓칠 수도 있어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 Kaltbad-First 역으로 돌아왔다.
스위스와 관련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강당에서 봤던 스위스에서 온 요들송 그룹의 공연과 역시 초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책 ‘하이디’일 것이다. 500장이 넘는 벽돌 같은 책이었음에도 그 안에 담긴 건 요한나 슈피리가 한 폭 한 폭 생생하게 그려낸 스위스의 산 마을이었다. 프랑크푸르트로 이사 와서 부드러운 흰 빵을 잔뜩 받고도 딱딱한 검은 빵을 그리워하고, 푹신한 침대를 가지고도 밀짚더미를 그리워하던 하이디가 생각난다.
다시 올바른 길을 들어서 Staffelhöhe 역까지 걷고, 땅바닥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며 린트초콜릿을 하나씩 까 먹었다. 그리고 기차타고 리기쿨름에 도착했다.
Rigi Kulm
역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은 Steiler Weg(더 험한 길), Bequemer Weg(더 편한 길)로 나뉜다. 경사 차이다.
정상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있다.
Arth-Goldau로 가는 기차를 잡아 타고 내려왔다.
기차를 하나 더 타서 루체른으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산 캠블리 과자를 먹었다.
Museggmauer
그리고 무제크 성벽을 보러 갔다. 톨스토이는 언제 루체른에 대한 글도 쓴거야? 찾아보니 아예 루체른 기행문을 써냈다고 한다. 영국인 부자들에게 화내고 루체른 바 웨이터에게 화내는 내용이라고.
경사진 길을 오르고 계단을 오르자 오래된 시계탑이 있었다. 루체른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Löwendenkmal
빈사의 사자상도 보았다. 프랑스 혁명 때 죽은 스위스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루체른에서 다시 기차를 타서 인터라켄으로 돌아왔다.
주방에 붙어있는 숙소의 역사와 규칙들.
독일에서 가져온 라면과 마트에서 산 맥주를 먹었다. 주방의 공용 음식 선반에 있던 버터 식빵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