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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3

스위스 여행 중 짧은 귀향(?)을 하게 되었다. 독일 Weil am Rhein에 있는 비트라캠퍼스를 가기로 한 것이다. 비트라캠퍼스를 스위스 바젤에서 가는 것이 독일 켐튼이나 뮌헨에서 가는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 언니와 ‘유럽에 있다 보니 기존에 갖고 있던 국경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왜곡되어 간다’는 얘기를 했다. 어떻게 독일에서 독일로의 이동보다 스위스에서 독일로의 이동이 더 쉽고,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의 이동이 더 쉬울 수가 있지?

여기서 내가 저지른 또 하나의 실수에 대해 적지 않을 수 없다. 난 17.46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 독일-스위스 왕복 플릭스버스를 샀었는데, 독일에서 스위스로 가는 플릭스버스는 내가 기차를 잘못 타서 날렸다면 스위스에서 독일로 가는 플릭스버스는 조사와 시간 계획을 게을리한 탓에 날리게 되었다. 싼 맛에 취리히에서 저녁 7시에 출발해 독일 콘스탄츠에 저녁 9시에 도착하는 버스를 샀다. 안일하게도 나는 일단 독일에 들어왔으면 그다음 켐튼으로의 이동은 어떻게든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전혀 계획을 안 짜 놓았다. 그런데 콘스탄츠에서 켐튼까지 기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것이 아닌가? 거의 켐튼에서 베를린 거리였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콘스탄츠 역에서 밤을 새고 첫차를 타서 하루종일 걸려 켐튼에 오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물론 역에서 밤새기 대신 숙소도 알아봤는데 관광지가 아니라서 가격이 사악했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9시에 Englisch 팀플 줌이 잡혔다는 것. 노트북이 필요했고, 노트북은 켐튼 기숙사에 있었다. 9시 전에 켐튼에 도착해야 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콘스탄츠행 플릭스버스를 취소하고 (돌아온 것은 1유로 바우처), 대신 뮌헨행 플릭스버스를 예약했다. 뮌헨에서 4시반에 첫차를 타면 켐튼에 7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잠도 못 잔 채 바로 팀플하고 2개 연강 들어야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바젤에 도착해서 트램을 탔다. 아침부터 창문을 빤딱빤딱하게 닦고 있는 바젤인.

트램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국경을 넘어 버렸다.

Vitra Campus

비트라캠퍼스는 각종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물과 박물관, 공장이 포함된 단지이다. 스위스 가구회사 Vitra가 조성한.

Eames 의자인데 47?번의 수작업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의자고 그 공정 과정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안 바뀌었다고 한다.

Panton 의자.

자기한테 맞는 의자 찾기 웹사이트가 있다.

나는 이 의자가 나왔다.

전시실 안에는 재밌는 디자인 레퍼런스 책, 사진 에세이 책 같은 것이 많았다. 그중 ‘디지털 노마드의 저널’이 있었는데

내가 안가본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지만 어쩐지 내가 스코페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상평이 들어 있었고 ‘I couldn’t shake the feeling of mystery and unfamiliarity this city had given me. The slow, peaceful lifestyle of its inhabitants contrasted with its brutal and terrifying history’

이 사람이 서울에서 겪은 일은 내가 티라나에서 겪은 일과 비슷했다. 낯선 곳에서 돈이 떨어지고, 폰 배터리가 나가고, 홀로 길을 잃고, 지칠 대로 지쳐도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다 보면 샌드위치 한 조각, 아이란 한 병, 딸기 한 상자에 구원받고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망막에 새겨지곤 했던 뭐 그런 경험 말이다. 나도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잘 엮어내서 이렇게 책이든 웹이든 뭐든 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신기했던 인덕션.

…우리 비트라하우스 정상영업 합니다.

‘영업 해요’

‘진짜?’

정원과 비트라 돔.

비트라 미끄럼틀 타워. 날씨가 너무 더워서 뭔가 화상 입을 것 같고(깔고 타는 천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럴 일 없었다), 너무 거대해서 안 타려고 했는데 언니가 타는 것을 보고 재밌어 보여서 나도 탔다. 재밌었다. 우리가 타자 갑자기 사람들이 와서 너도나도 타기 시작했다.

공단에 예전에 화재가 났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체 소방서를 지었는데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다고.

길을 좀 헤매다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 근처 레베에 들어왔다. 스위스 물가를 보다가 독일 마트에 오니 편안해져서 빵과 음료 등 이것저것 샀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샐러드바를 이용해 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레베 앞 의자에 앉아 말도 없이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다시 트램을 타고 바젤로 돌아왔다.

Basel

에라스뮈스, 파라켈수스, 오일러, 니체, 융 등의 인물이 거쳐갔다는 바젤대학교를 구경했다. 생각보다 볼 게 없었고 내부는 평범한 대학교의 모습이었다.

바젤시청이다. 뭔가 다른 스위스의 건물들과 다른 양식이다.

바젤대성당.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에 밖에서라도 찍어 보는 바젤 미술관.

스위스 수도 베른으로 왔다.

Zytglogge

시계탑.

시계탑을 건너 아인슈타인 하우스가 있는(역시나 월요일이라서 문 닫은) 쭉 펼쳐진 거리마다 저렇게 비스듬하게 걸쳐진 지하로 들어가는 문들이 있다. 그 안에는 가라오케, 박물관, 미용실 등이 있다.

BärenPark

계속 같은 방향으로 이동해 곰 공원에 도착했다.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베른의 마스코트도 곰인데, 베른이라는 도시 이름은 베를린과 달리 진짜로 ‘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강 가까이 있는 길을 걷다가 나왔다.

Rosengarten

그 다음 장미공원에 갔다. 여기도 가는 길이 경사지다. 산이 아니더라도 스위스는 매일이 하이킹이다.

상상했던 장미로 가득찬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좀 더 들어가면 꽃들이 꽤나 많이 만개한 정원과 피크닉하기 좋아보이는 들판, 카페, 레스토랑이 나온다.

트램을 타고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온다. 저 좌석이 신기하게 생겨서 찍었다.

‘건강이 점점 비싸진다’ 본문은 의료비에 대해 말하고 있긴 하지만… 스위스에서 싼 거 찾느라 빵이랑 라면만 먹고 있는 지금 남일같지 않아서 찍었다.

식수대처럼 생긴 것들이 많은데 독일에선 ‘Kein trinkwasser’가 쓰여있지 않으면 웬만해선 마셔도 된다고 듣긴 했지만 마시지 않았다.

베른에서 다시 숙소로 왔다. 숙소 주방에 걸려있는 그림 중 하나.

주방은 이렇게 생겼다.

퐁듀

쿱에서 퐁듀용 치즈를 샀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돌리고 젓고 다시 돌리고 젓고 다시 돌리고 저으면 된다. 그리고 오늘 독일에 갔을 때 레베에서 싸게 산 빵과 어제 남은 소세지를 찍어 먹었다. 치즈에는 술이 들어서 약간 쌉쌀한 맛이 난다. 파프리카 과자와 남은 쿠키와 Rivella도 함께 먹는다. Rivella는 우유에서 유당을 빼서 만든 탄산음료라고 한다.

너무 배가 불러서 저녁 산책을 나왔다. 너무 파래서 인공 하늘 같았던 인터라켄 밤하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