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근처 경치를 뽕 뽑기 위해서 아침 일찍 다시 나왔다. 언니는 조깅을, 나는 산책을 했다.
Aare
빙하가 녹은거라 물의 성분이 다른지 색깔뿐만 아니라 질감까지 뭔가 다르다. 물이 뭔가 기름진 것 같은 물결 모양을 만들어낸다.
늦게까지 열어서 애용했던 숙소 근처 쿱.
독일에서 가져온 브로콜리 치즈 컵파스타를 아침으로 먹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Interlaken Ost 역에서 IC81 타고 취리히로 가는 동안 쿠키와 요거트를 더 먹었다.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 Toni-Areal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에 갔다. 취리히 예술대학교와 함께 있다. 전시는 Swiss Design Collection과 Archive로 나뉘어 있었고 새로운 전시도 준비중이었다.
아드리안 프루티거의 서체 개발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전시관에서 벽면을 올려다보면 스위스의 로고들과 포스터들이 보인다.
배려=안전.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의 작업들이 많았다. 공익 포스터 만드는데 저렇게 시각적 실험을 할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싶다.
이런 식으로 서랍들을 열어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전시실이 작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엄청 오래 있었다. 디피가 시간순서로 되어 있지 않고 고유한 방식으로 정렬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새롭고 좋았다.
SBB도 요제프뮐러브로크만이 디자인한 거였다. 로고 안에 세가지 언어를 과감하게 병렬한 것, 심볼 안에 스위스 국기를 넣은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화살표아이콘과 의자, 침대 아이콘을 무조건 가운데 정렬하지 않고 착시와 시선 흐름을 고려해서 여백을 세심하게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근데 며칠간 스위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느낀 것은 기차들 아이콘이 서로 비슷하고 복잡해서 멀리서 봤을때 한눈에 구분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건 왜 이렇게 했을까?
1948년부터 컴퓨터그래픽을 시도한 디자이너..
이 Geigy라는 회사는 제약회사였는데 왜케 디자인에 투자를 많이 한건지? 이미 스위스는 경제도 정치도 다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에 투자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걸까?
자연이 유명한 나라인만큼 관광 관련 그래픽도 많다.
요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플러그도 다 뜻이 있었음을 알게되고…
재밌는 툴이었다. 포스터들을 다양한 기준으로 분석하는. 맵핑된 포스터들 중 하나를 선택하면 무슨 알고리즘에 의해 연관 포스터 두 개가 함께 선택된다.
중심선을 추출하기도 하고
스트로크를 추출하기도 하고
텍스트를 추출하기도 한다.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 저 앞에 있는 물건들을 보고 종이를 안 보고 펜을 떼지 않은 채 그리는 거다.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한 건데 모션그래픽이 재미있었다.
학교 수업 중 하나에서 러시아에 대한 논문을 쓸 때 내 팀원이 쓴 부분 중 저맥락 사회의 요리책과 고맥락 사회의 요리책을 비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저맥락 사회의 요리책에서는 모든 재료의 구체적인 양과 정확한 조리법을 기재했지만 러시아의 전통 요리책은 ‘소금을 적당히 넣는다’, ‘다 될 때까지 끓인다’ 이런 식으로 읽는 이의 사전지식을 가정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정말 요리책은 그 문화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가족들에게 요리를 배워서 요리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종이로 의자 접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제일 어려운거 골랐는데 망해서 버렸다.
다음은 Archive 전시실로 갔다. 많이 본 스위스의 로고들이 보인다.
디피가 진짜 특이하다. 물건을 선정한 기준이나 분류, 정렬한 기준은 제대로 안 봤지만 설계가 되게 섬세하게 된 전시인 것 같았다.
미그로스에 가서 점심을 샀다. 저 참치 샌드위치 완전 참치 많이 들고 맛있었다. 스위스 마트는 비싸긴 하다만 값어치를 하긴 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마트에서 사먹은 음식들 중 불량식품 같다거나 실망스럽다고 느낀 게 없다.
Löwenbräukunst Areal
여기는 양조장을 미술관으로 바꾼 곳이다. 여러가지 미술관이 한 건물에 있다.
먼저 Museum Haus Konstructiv. 추상미술작품 모아놓은 곳이다. 스위스패스로 무료로 관람했다. 나는 여전히 추상미술은 모르겠다. 작품의도가 쓰여 있는 종이를 주길래 최대한 다 읽고 어떤 의도로 저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대부분의 작품과 작품의도의 연관성이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이게 그나마 설명을 읽었을때 좀 매치가 됐던 건데. 그나마 구상적인 작품이라 그랬던 것 같다. 전선의 일부분을 확대하고 전혀 맥락없는 곳에 놓으면 유기체처럼 보이는 걸 표현했다고 하던가?
이걸 보고는 컴퓨터그래픽스 시간에 배웠던 평면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계산되는게 떠올랐다.
내부 구조가 미로 같았다.
다음은 같은 건물의 Kunsthalle Zürich에서 조지아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조지아의 역사에 대해 좀 알 수 있었다.
알바니아 전통에 대한 영상이 있었다. 전쟁으로 전통문화가 많이 소실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고, 아직 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곳의 무슬림 문화와 양털 따위로 옷을 만드는 문화를 가까이에서 찍은 것이었다. 알바니아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미그로스가 만든 Migros Museum für Gegenswartskunst에도 갔다가, 이런 공간이 있어서 차 마시고 쉬다가 출발했다.
트램 4번은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는데 박물관 트램? 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술관, 박물관들을 쭉 잇고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문을 닫는 5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Kunsthaus Zürich는 스위스패스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공짜라고 했던 것 같기도.)
그래서 이른 시간에 취리히역에 도착했다.
아까 산 초콜릿 뻥튀기 과자와 역 쿱에서 산 빵과 카페라떼로 저녁을 때우고
지하철역 안 가게들을 구경했다. 지하철역 안에서 음료수로 가득 찬 카트를 끌고 다니던 음료수 광고하는 알바가 공짜 음료수를 나눠줘서 받았다.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동행자와 헤어져야 할 때 비가 오기 시작한다. 7시쯤 언니가 먼저 플릭스버스 정류장을 향해 빗속으로 들어갔다. 외지에서 둘이 여행하다 한 명을 먼저 보내고 나면 빈자리가 크다. 저녁을 이미 먹었는데도 또 쿱에서 베를리너 프레첼을 사서 헛헛함을 때운다.
플릭스버스
그리고 한 시간 쯤 뒤 나도 비에 쫄딱 젖은 채 플릭스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는 웨이팅룸, 화장실 등이 있다. 나는 버스가 올까 봐 기웃기웃거리느라 밖에 계속 서 있었다.
버스는 10분쯤 전에 도착했고, 예정시각보다 4분쯤 일찍 출발했다. 버스가 오는지 계속 기웃거리고 있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비에 약간 젖은 달달한 베를리너 프레첼과 취리히역에서 공짜로 받은 녹차 민트맛? 음료수를 마신다. 독일 프레첼은 질기고 쫄깃쫄깃한데 스위스에서 먹은 프레첼들은 부드럽고 푹신푹신했다. 나는 질긴 프레첼이 더 좋다.
플릭스버스를 알바니아 때도 타봤지만 제대로 로고가 박히고 버스 모양을 한 걸 타보는건 처음이었고 앱에 이렇게 위치가 뜨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분명 Munich가 버스에 찍혀 있는 걸 보고 탔으니 맞을거라고 믿으며 기다렸다. 스위스와 독일을 분리하는 호수를 왼쪽으로 도는 것이 원래 경로였는데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스트리아까지 거쳐서 갔다. 여권 검사는 맨 처음 버스에 탈 때 한 번밖에 안 했다.
비내리는 버스 안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뿌옇던 창밖이 시꺼매졌다. 버스 안에서 다음날 아침 팀플을 위해 대본을 읽고 달달 외웠다.
5월 21일 수요일 자정이 조금 넘어 예정시각보다 20분 일찍 뮌헨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약 10분을 뮌헨의 밤길을 걸어서 뮌헨역에 도착했다. 스위스와 같은 듯 다른, 좀더 투박하고 좀더 시끄러운 독일이다. 3월 1일인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뮌헨도 독일도 참 낯설었는데 돌아오니 왜 이리 반가운지! 그날도 이른 새벽이었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햇빛이 강렬할 때 눈을 감으면 눈꺼풀 속 혈관이 비쳐 시야가 빨개지며, 그 상태로 오래 있다가 눈을 뜨면 그 잔상이 남아 세상이 일시적으로 청록색으로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처음 왔을땐 독일도 강렬한 하나의 색이었는데. 다른 나라에 여행 갔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오면, 그 갔다온 나라의 잔상이 보색으로 남아 일시적으로 덧씌워져 보인다. 그리고 여행 갔던 나라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보색은 항상 다르다. 그래서 여행 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독일이 조금씩 다른 색으로 보인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빵을 사먹었던 빵집은 수도가 고장났다고 휴점한 상태였다.
첫차까지 4시간이나 역에서 때워야 했다. 일단 24시간 하는 맥도날드에 가서 빅맥 한개를 사먹었다. 맥도날드에는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더 뻐팅기고 있었어도 되는데 뭔가 지겨웠는지, 청소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의식했는지 한 시간도 있기 전에 나도 모르게 자리를 싹 치우고 매장을 나와 버렸다.
일단 닦기만 하면 된 거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바닥의 청소차가 지나간 구정물과 남발된 S반 로고
결국 역에만 있는 게 지겨워서 첫차 한시간 전부터 플랫폼에 나와서 철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꽤 추웠다. 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기차에 타자 잠이 쏟아져서 약 2시간의 쪽잠을 잤다.
그리고 기숙사에 도착해서 씻고 바로 팀플과 연강과 밀린 세탁물들이 기다리는 또다른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