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2025-05-30

다시 교환학생 여행 클리셰로 복귀했다. 1) 당일 아침에 짐을 싼다. 2) 여행가방을 메고 8시에 독일어 수업을 듣는다. 3) 2.9유로짜리 길쭉한 샌드위치를 들고 켐튼역으로 간다. 4) 기차가 연착된다. 5) 기차를 탄다.

유일한 다른 점은 이번에는 그 이후의 기차들이 (크게) 연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사히 타고 갔다. 원래 RE기차를 5번 타는 거였는데, 내가 würzburg역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느라 늦어서 원래 한번 더 갈아타야 하는 걸 한번에 가는 다음 기차를 타서 총 4개의 RE를 탔다.

기차에서의 시간은 항상 그렇듯 금방 지나갔다. 서버 호스팅 서비스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VPS를 사서 서버를 직접 만든다’ 는 선택지를 처음 떠올리고는 챗지피티와 상담하고, 호스텔 온라인 체크인하고, 할 일 리스트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표면의 올록볼록함 때문에 서체가 변형된 모양이 재밌어서 찍었다.

소설 ‘하이디’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골마을과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의 대조를 중심 축으로 한다. 나도 스위스 에 막 갔다왔기 때문에 내 눈에 비칠 프랑크푸르트가 퍽 궁금했다.

5시 반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호스텔 a&o 프랑크푸르트 갈루스바르테에 체크인하러 갔다. 며칠전 비가 오더니 갑자기 여름 날씨가 됐다. 겉옷을 2개 입고 있었는데 벗어서 들고 호스텔로 걸어가는 20분 동안 쪄 죽는 줄 알았다. 중앙역 말고 갈루스바르테 역에서 내렸으면 바로 앞인데 몰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리셉션에서 온라인 체크인한 앱 화면을 보여주고 카드키를 받았다. 건물 A, B, C가 모여 있는데 내 방은 C에 있었다.

세탁을 위한 행진

항상 하던 대로 여분의 바지를 하나도 안 챙겨왔는데 바지가 더러워져서 잠옷으로 챙겨 온 반바지로 급하게 갈아입었다. 리셉션에 세탁실이 있는지 묻자 지하에 있다고 알려줬다. 가봤더니 세탁기 세 대가 있고 세제와 건조기는 없는 것 같았다. 다시 물어보기도 귀찮고, 한 번쯤 무인 세탁소를 사용해 보고 싶었어서 근처에 열려 있는 유일한 세탁소 Laundry Wash World로 트램을 타고 갔다. 비닐에 빨래를 넣어서 들고 갔다. 꼴이 꽤 추레했는데, 주위에도 대부분 패션 테러리스트들이라서 자연스럽게 묻혔다.

11번 트램을 탔다. 세탁소로 가는 도중 트램에 탄 한 쌍의 남녀는 싸우고 있었다. 여자가 무시무시한 성량으로 고함을 쳤다. 경찰 3명이 들어오고, 트램이 잠깐 멈췄다가 출발했다. 입을 옷이 없는 비상 사태에 난생 써 본 적도 없는 코인세탁소를 써 보겠다고 이상한 옷차림으로 나온 내 상황과 여기서 본 모든 기이한 장면들이 마치 꿈 속 관련 없는 사건들이 나열된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이 흥미진진했다.

프랑크푸르트 길거리에는 온갖 대륙에서 온 음식점들이 있고,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회색 봉지를 거래하는 두 사람도 보인다. 도착한 세탁소 입구 언저리에서 세 명의 20-30대 남녀가 길바닥의 꽁초와 가루 더미를 둘러싸고 앉아서 퀭한 눈으로 고개를 떨군 채 정지해 있다.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며 세탁소에 들어갔다. 좀비 아포칼립스 같다.

내가 본 도시들 중 그나마 베를린과 비슷한데 더 글로벌하고 더 터프했다.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독일은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가 다 다른지 어차피 비자 문제 때문에 못 나가는거 독일 안에서만 돌아다녀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탁소는 동전으로 작동하는 것도 있고 앱으로 하는 것도 있었다. 나는 더 익숙한 앱으로 했다. 한번에 20유로를 충전해야 하고 세탁은 1회에 5.5유로, 건조는 2유로이다. 비싸지만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밀레 세탁기 빈티지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낙서도 많다. “사랑은 항상 질투와 증오보다 강하다 !”

“하지만 모두가 증오를 선택한다…???”

Penny

세탁기가 돌아가는 1시간 동안 그 추리닝 바람을 하고 근처에 있던 페니에 갔다왔다. 호스텔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우리 동네에는 페니가 없어서 이번이 처음 가는 거였다.

버터밀크라는걸 먹어본다. 아이란과 비슷한 맛이다. 가격도 싸서 더 손이 잘 간다.

세탁기가 끝나서 빨래를 건조기로 옮긴다. 건조는 15분 걸렸다. 건조를 기다리는 동안 투굿투고를 둘러보다 Mr.clou라는 집의 surprise box를 신청했다. 신청하고 나서야 구글리뷰를 슬쩍 봤는데 평점이 파탄나 있었다. 그냥 맛없다는 것도 아니고 음식이 상했다는 말이 많다. 그래도 이미 픽업 가능 시간이라 취소가 안되기 때문에 건조가 끝난 빨래를 비닐에 도로 넣어가지고 픽업하러 갔다.

세탁과 건조는 세제 안 넣고 돌렸는데도 기숙사 세탁실보다 만족스러웠다. (그래야지 7유로인데)

Mr.clou 투굿투고

가는데 중앙역 앞에서 마약 중독자가 허리를 완전히 꺾은 채로 내가 픽업하러 가는 Mr.clou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가게는 중앙역 안에 있는 작은 부스였다. 점원이 불친절하단 말도 있었는데 내가 만난 점원은 친절했다. 야채, 밥, 알수 없는 무언가 3개중 고르라고 해서 야채 고르고, 소스는 노란색 망고소스를 했다. 남은 게 많아서 푹푹 떠 줬는데 종이 상자가 꽉 채워져서 잠기지 않았다. 냄새를 맡아 보니 시큼하고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종이봉투를 안 받겠다고 했었는데 소스가 넘쳐서 다시 가서 받아왔다. 냄새나는 종이봉투를 들고 눈치 보며 S반을 탔다.

그리고 호스텔에 돌아와서 먹었다. 들은 대로 채소가 신선하진 않았는데 냄새에 비해 맛은 있었고 양도 많았다.

호스텔 1층에는 별 게 다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나오고(chop suey!부터 인도음악 라틴음악…) 등등. (근데 여기서 이틀 동안 저녁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정된 플레이리스트를 계속 반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임기, 바, 자판기, 충전기가 있는 테이블과 의자 등. 사람들이 밤에도 떠들거나 노트북으로 볼일을 본다. 해지면 다 불끄고 들어가 자는게 내가 아는 독일인데.

원래 계획은 도착해서 뢰머광장이랑 쇠 다리 보고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저녁 먹고 들어와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완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트램 타고 분주하게 시가지를 돌아다니고, 평점 파탄난 가게에서 떨이 처리하는거 주워먹기? 이것도 프랑크푸르트를 경험하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였겠지.

벙커베드는 요즘 계속 2층 돼서 너무 좋다! 지금까지 도미토리에서 써본 벙커베드들 중 가장 튼튼해서 삐걱거리지 않고 사다리도 발 안아프고 절벽부분에 구조물도 있고 벽 쪽에 수납공간 있고 발치에 충전포트 있음. 잘 준비를 한 다음 11시에 다시 로비에 나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베를린은 돌아와서 열흘 후에 블로그를 완성했고,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때는 좀더 빨리, 스위스 때는 이틀 후에 완성했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여행 도중에 블로그를 쓰고 있다. 정보량은 좀 적겠지만 더 생생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저녁에 일찍 들어왔을 때 이렇게 노트북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는게 좋다. 앞으로 가는 숙소들도 이곳만 했으면…

원래 여행 오면 일찍 자는데 어쩐지 자기가 싫다. 로비가 밝고 음악이 신나고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이렇게 주변환경이 생체리듬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구나. 독일에 있는 동안 아침형 인간이 됐었지만 서울로 돌아가면 원상복구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12시다. 진짜 들어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