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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

6월 4일, 컨퍼런스 첫날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마트에서 과자와 음료를 사왔다. 11시부터 3시까지 온라인 워크샵을 3개 정도 들었다. 조경할때 쓰는 디지털 툴들을 소개하는 워크샵들이었다. 내 전공이 아니라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흥미로웠다.

홍수같은거 시뮬레이션, 무슨 커뮤니티 있는지,
다 디지털화됨 요즘. 디지털하면 좋은점: 도면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비대면할 수 있고 site에 대한 영향을 미리 알아볼 수 있고 사용자와 주주를 참여시킬 수 있다.

water consious landscapes: 물에 대한 효율, 내성, 자원, 관리(필터링 등)
식물 데이터베이스(물 얼마나 먹는지)
물 예산 짜는 툴도 있음. 디자인할때 디자인만 하지말고 이런것도 같이 생각해라~

워크샵이 끝난 후 약 1시간 동안 호스텔 침대에서 뒹굴며 컨퍼런스와 상관없는 내 개인프로젝트 관련 구글 설문조사를 만들었다. 4시 반쯤 출발해 컨퍼런스 오프닝 키노트를 보러 갔다.

Bauhaus Dessau

바우하우스다. 데사우에는 캠퍼스와 Kornhaus를 비롯해 바우하우스에서 지은 건물들이 몇 개 있다. 바우하우스 옆에는 Hochschule Anhalt가 있는데 건축, 시설 관리, 지리 정보, 디자인을 가르친다.

데사우 캠퍼스는 “모더니즘의 요람”이라 불리는 유서 깊은 바우하우스를 자랑합니다. 이 역사적인 장소의 매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화려한 석사 기숙사와 유서 깊은 카페테리아에서 말이죠. 친숙한 분위기, 교수진과의 열정적인 교류, 그리고 짧은 통학 시간까지, 학생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데사우 캠퍼스를 칭찬합니다.

인구 변화는 뚜렷하고, 도심의 빈 건물들은 창의적인 활용을 기다리고 있으며, 문화 예산 삭감은 현실입니다. 이러한 과제들은 데사우 캠퍼스에서도 해결되고 있습니다. 안할트 응용과학대학교는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과 안할트 극장과 같은 교육 및 문화 기관들과 함께 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와 데사우 시는 모두 실험과 발전의 장입니다. 우리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Hochschule Anhalt의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글귀들이다. 바우하우스도 옆에 뒀겠다, 조용하게 건축 공부 하고 싶으면 여기가 딱이라는 얘기를 했다.

Cafe-bistro im bauhaus이다.

0.7유로인 Dickmann’s가 궁금해서 먹어봤다. 안에는 액체 같은 마시멜로(?)였다.

키노트에서는 Sachsen-Anhalt주에서 하고있는 NEB(뉴 유러피안 바우하우스)라는 캠페인인지 단체인지가 발표를 했다. 환경에 좋고 inclusive하고 아름다운 건축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였고, 지역 주민들과 소통할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방법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바우하우스 기숙사 건물이었다고 한다.

저 다이빙대 같아 보이는 개인 발코니에 이렇게 14명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기숙사에서 파티도 많이 했다고 한다.

케밥집에서 6유로에 저녁을 먹었다. Döner Kebab의 도너가 돈다는 뜻이라서 회전하는 고깃덩이를 의미하고, 케밥은 구운 고기, 생선, 야채 따위가 들어간 요리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너 케밥’ 자체에는 도너 케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빵으로 싸여 있는’ 이라는 의미가 없었던 거다. 테이크아웃을 위해서 빵으로 감싸게 된 것 같다. (찾아봤더니 진짜였다)

도너케밥의 형태에 대해서 좀 알게 됐는데 Dürüm döner는 얇은 빵으로 돌돌 말은 것, Döner teller(plate)는 싸지 않고 접시에다 놓은 것, Döner box는 종이상자에 담은 것을 의미한다. 케밥집에서는 항상 야채를 다 넣을 거냐고 komplett?을 물어본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1년동안 살았다는 집을 지나간다.

걸어서 엘베 강까지 가 본다.

데사우가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모더니즘 단독주택들이다. 엘베 강 주변은 우리나라 단독주택 단지에서 많이 본듯한 풍경이었다.

다시 호스텔로 걸어가려면 40분정도 걸어야 해서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가 예정시각을 넘어도 오지 않았다.

결국 걸어서 집에 돌아갔다. 가는 길에 24시간 영업하는 마트가 있다고 구글맵에 떠서 가봤지만 얄궂게도 닫혀 있었다.

6월 5일, 컨퍼런스 둘째 날이다. 일찍 일어나 씻었다. 호스텔은 한가해서 항상 화장실과 샤워실이 비어 있었다.

마트에서 어제 산 음료수병을 판트해서 얻은 25센트로 1n센트짜리 빵을 사먹었다.

5일과 6일은 논문 발표가 있고 중간중간에 Coffee break와 Lunch break가 있다. 논문 발표는 Room A, B로 나뉘어 동시에 진행된다. Coffee break와 논문발표시간 동안 강의실 밖에는 커피, 차, 주스, 쿠키, 과일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었다. Lunch break 동안에는 사진과 같은 고기 스튜(채식 메뉴도 있음)와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가 나왔다. 점심 시간이 끝나면 작은 케이크들이 나온다. 이상 컨퍼런스보다 밥에 관심이 많았던 한 관광객의 리뷰였다.

둘이서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한국분이세요?‘가 들렸다. 한국인 교수님이 계셨다. 논문발표할 때 기자재 조작하시던 분도 한국 분이셨다. 함께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했다. 우리의 전공, 이 컨퍼런스, 교수님이 일하는 대학 등에 대해. 조경 대학원은 조경학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타학과 출신의 장점이 많으며, 조경은 대학원에서만 배워도 실무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그럼 조경 학부는 왜 존재하냐고 묻자 학부만 졸업하고도 실무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회사에서 석사를 좀더 선호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시각디자인학과라고 하자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물으시길래 웹 할 거라고 답했더니 ‘그거 곧 AI로 대체될 거 아닌가?’ 라고 하셨다. ‘교수님 분야 아니라서 잘 모르시잖아요’ 라는 첫 생각 뒤에 따라온 생각은 ‘내 분야…?지만 사실 나도 (어떻게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지) 잘 모르지’ 였다. 교수님께 조경이 웹보다 더 늦게 대체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조경은 실제 물리적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냐고 여쭤봤다. 그것도 그렇고 사람과 연관이 많고 너무 복잡해서? (내가 까먹은 것일 뿐 이렇게 단순하게 답하시진 않았음)라고 하셨다.

조경이 웹보다 더 ‘복잡하다’면 그 복잡함이 어떤 복잡함일까? 변수의 복잡함일까? 웹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사용자의 키보드나 마우스를 통한 인풋, 접속 빈도와 위치 등으로 비교적 한정되어 있다. 웹의 아웃풋은 2D 스크린 안에만 존재하며, 주로 시각에 한정되어 있고, HTML과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또 다른 기술의 위에서 실행된다. 조경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사람의 신체 전체, 지구권과 외권, 즉 이 세상 자체이다. 조경의 아웃풋은 4D 공간에 놓이고,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각의 범위가 더 넓고, 웹과 달리 필연적으로 어떤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따졌을때 웹보다 조경이 해결하는 문제의 폭이 더 넓고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웹을 선택하기로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실물 만지는게 싫어서였다. 재료 조사해서 선택해서 주문하고, 업체 골라서 발주 넣고 후가공 하는 것은 엄청 손이 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한 번 실패 시 날리는 돈과 시간이 커서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시공간적 제약이 없기 때문에 좋아했는데(초기 비용이 덜 든다, 작업자의 노트북이 곧 작업실이다), 어쩌면 그 점이 시공간에 대한 영향이 적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복잡성이 한 차원 낮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러면 자동화가 더 쉽겠지.

그래서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시야를 화면 위에만 고정시키기보다 실제 세상으로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분야가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갈 경우 그 분야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분야의 정의를 확장하는 식으로 가야지 그럴 때마다 버린다고 치면 아무것도 할 게 없을 거다. 교수님이 웹의 미래에 대해 잘 아시고 한 말씀인지, 그냥 별 생각 없이 던지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툭 던져진 문장은 그게 ‘교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파장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권위와 명예라는게 중요한 걸까나?

그리고 논문 발표할때 계속 귀를 사로잡는 딕션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시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분이 Carl Steiniz라는 컴퓨터 2D 이미지를 창시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됐다. 몇 년 전 이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그분께 크리틱 받았었다는 분께 그래도 그런 대단한 사람한테 까이면 기분이 덜 나쁜지 물었더니 며칠 후에는 그렇지만 며칠 동안에는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걸까’ 하고 좌절한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컨퍼런스에 발표하러 오는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내가 이런 연구를 하고있다 자랑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고, 컨퍼런스에서 논문들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는데 거기 자신의 논문을 넣을 수 있어서 참여한다고 하셨다.

6일, 논문 제목들 중에 인천 송도가 나오길래 기대했는데 어째서인지 건너뛰었다…

발표자들은 직접 발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발표 동영상만 제출한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 발표 시 기술 문제로 피드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발표 내용은 생소한 분야고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데 독일까지 와서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저명한 석학들에게 자기가 하고 있는 연구를 아주 낱낱이 평가받고 피드백을 나누는 것을 보며 모든 발표자들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규모가 작은 컨퍼런스라서 우리만 놀러온 사람이었고 우리만 학부생이었다. 언니는 하루는 저녁식사에 참석했는데 발표를 안 한 사람이 자신 뿐이었다고 했다. 모두가 진지하게 발표 후 받은 질문에 대해 곱씹고 앞으로의 연구에 대해 고심하는 가운데 나만 케이크와 커피를 음미하며 날씨를 즐기고 있으니 케이온에서 본래 목적인 악기 연습은 내팽개치고 죄책감도 없이 티타임을 즐기는 경음악부 멤버가 된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도 씁쓸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발표자들 사이에서 대조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극한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웹툰 대학원 탈출일지에서 학부생을 해맑고 때 묻지 않은 병아리로 그리던데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려나 생각했다. 혹은 눈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컨퍼런스에서는 밥 말고도 다이어리, 두꺼운 논문책, 펜, 수료증, 에코백을 주어서 참여비가 아깝지 않았다.

Bauhaus Museum Dessau

컨퍼런스 일정에 바우하우스 박물관 투어가 있었는데, 바우하우스 박물관이 데사우에 두 개 있던 모양이다. 온 김에 그냥 이쪽 바우하우스 박물관을 보기로 했다.

1층에는 특이한 전시가 있었다. 내용은 어려웠지만 디피 방법이 눈에 띄었다. 골판지를 사용하고 책 지지대를 사용하는 등.

이건 세포의 세포벽을 통한 교류에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2층인가 3층에 본격적인 바우하우스 전시가 있었다.

저 한국에 흔하디 흔한 발코니 이어진 공동주택도 바우하우스에서 만든 거였다니.

나와서 ‘붐비는 지역’으로 표시되는 곳에 가보기로했다. 붐비는 지역이 없을 것 같은 데사우였는데 나름 있었다.

데사우 이곳저곳에 실험적으로 생긴 모더니즘 건축물들이 있다.

도너를 먹었다. Halloumi라는 터키 치즈를 넣은. 맛있었다.

레베에 들렀다가 코코넛이 있길래 샀다. 동봉된 나무조각으로 구멍을 뚫고 빨대를 꽂아 마실 수 있었다.

주방에서 마주친 한 사람이 나에게 How did you manage to open the coconut? 이라고 물어봐서 바닥에 던져 깼다고 답했는데, 둘레에 절취선이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까먹고 안 말해서 괴력의 여자가 되고 만 듯하다. 호스텔에서 코코넛 과육을 조각내서 전체의 3/5정도를 한 번에 와드득 와드득 턱이 아프도록 씹어먹고, 다음날 아침으로 먹고, 남은 두 조각은 돌아갈 때 기차에서 마저 먹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소화기관에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6월 7일, 아침 10시 20분에 출발하는 루트가 정말 운좋게도 3번만 갈아타면 되는 거였다. 그 4대의 기차가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지 연착이 한 번도 안돼서 언니와 함께 편하게 타고 켐튼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