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최대한 소리를 죽여 어둠 속에서 짐을 챙겨 2층 침대 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사물함에서 내 모든 짐을 빼서 방 밖으로 나온다. 주방과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짐 정리를 하고 나갈 준비를 완벽히 마친다. 그리고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리셉션 오픈은 6시다.
카운터에 있는 포스트잇에 메모와 키를 남기고 사진을 찍어 왓츠앱으로 보낸다. 그런데 불안해서 혹시 몰라 전화도 해본다. 받으면 안되는데 받으신다. 너무 죄송하다. 키는 그냥 사물함에다가 놓고 가면 된다고 한다. 다들 그냥 놓고 가는데 새삼스레 왜 걱정을 하냐는 투다. 자다 깬 목소리로 ‘햅어나이스트립’ 까지 하신다. 진짜 진짜 죄송해요…
호스텔을 나오니 새벽이라지만 늦은 밤과 다름없이 깜깜하다. 가로등도 밝고, 이따금씩 사람들도 보이고, 낮에도 많이 지나다닌 익숙한 길이지만 외국이라는 점에서 제법 긴장된다. 쌀쌀한 기온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구글 맵에 표시된 버스정류장 위치로 빠르게 걷는다.
출발 시간 30분 전인데 이미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저 버스의 반가운 ‘Tirana Airport’ 사인…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기사님이 영어도 안 하시는데 바디랭귀지로 와이파이 연결도 도와 주신다.
사람들이 탑승하고, 400유로를 내고, 다들 창 밖 화단의 들개 두 마리의 싸움을 관전하다 5시에 버스가 출발한다. 안녕 티라나!
Tirana International Airport
5시 반쯤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빵을 두 개 사 먹는다. 저건 ‘시금치 나선형 파이’이다. 멤밍겐에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비행기를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비행기 탑승 위치로 이동한다. 비행기에 탑승한다.
7시 10분, 비행기가 이륙한다. 우연히 맨 앞자리 좌석이 걸려서 다리 뻗고 앉아 본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1시간은 자고, 1시간은 폰으로 사진 보정을 한다. 주로 한 것은 Light balance 조절, 하이라이트 명도 올리기, tint 조절. 그게 두 도시 특유의 축축함과 서늘함, 구름 틈새로 비추는 강렬한 하얀 빛을 강조한다.
9시 15분, 멤밍겐에 도착한다. 입국심사를 한다. 근데 내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 드러난다. 시청에서 며칠 전 받은 임시비자 종이를 가져갔어야 하는데 안 가져가서 어떤 방으로 경찰들과 함께 간다. 비자도 없고, 비자 사진도 없고, 방이 잠겨있어서 누군가 비자 사진을 찍어 보내줄 수도 없다는 멍청한 나의 사정을 듣고 컴퓨터로 내 비자를 찾아 주신다. 나는 풀려난다.
멤밍겐 공항에서 멤밍겐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멤밍겐 역에서 켐튼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독일에 오니 아무도 나한테 니하오 안하고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는게 너무 이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