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의 시작도 8시 독일어 수업과 함께한다. 수업을 마치면 훌쩍 떠나버릴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1시간 반짜리 수업을 듣는다. 기숙사 방에 들러 씻은 뒤 어제 준비해 둔 리스트를 보며 짐을 챙긴다. 그리고 멘자에 들러 길쭉한 살라미 샌드위치를 흐트러지지 않도록 종이봉투에 잘 싸서 몽둥이처럼 한 손에 들고 나온다.
11시, 켐튼역에서 같이 여행할 언니를 만난다. 언니와는 알바니아에서 마케도니아에 가는 4일간 같이 다니고, 나는 혼자 마케도니아에서 하루 더 자고 알바니아로 다시 이동해 하루 더 있다 갈 계획이다.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해외여행(현재 거주지인 독일 제외)은 태어나 처음이다. 하지만 동반자가 있어서 그런지 놀랍도록 평온하다. 그저 중요한 몇 가지—여권과 현금—만 지니고, 중요한 이동 몇 가지—예약해둔 비행기와 버스—만 잘 수행한다면 나머지 전부는 그곳의 공기가 채워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샌드위치를 씹어먹으며 기차를 기다리고, 기차에 타서 먹어 없앤다.
12시 전에 멤밍겐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 절차는 순탄하게 흘러간다. 알바니아어 인삿말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본다. 생소하다.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바니아 사람들일까? 독일을 여행하거나 독일에 있는 지인을 방문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일까? 독일인 중에 알바니아로 여행을 가려는 사람은 이 중 몇 명일까? 이런 잡생각을 하며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다.
시간이 되어 줄 서서 버스를 타고 비행기 앞까지 이동해서 내린다. 작은 비행기라서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복도 대신 계단을 이용해 비행기에 탑승한다. 개인 비행기에 오르는, 신문에 나오는 유명인이 된 기분을 느끼면서. 비행기는 예정 시간보다 좀 지연된 시각에 출발한다.
Nënë Tereza
2시간의 비행 후 Tirana International Airport “Nënë Tereza”에 나와서 처음 본 풍경은 탁 트인 하늘과 저 먼 곳에 펼쳐진 산맥이다. 대기는 독일보다 촉촉하지만 쾌적한 수준이다. 공항 안으로 이동하며 우리는 유럽 땅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동남아시아의 향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지중해성 기후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 본다. 어딘가 태국이 겹쳐 보이는 다채로운 색의 공항 안에서 환전소를 찾아 유로를 레크로 환전한다. 지폐마저 다채롭다.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구글 맵에 까맣게 표시된 LUNA 버스 노선에 몸을 싣는 것이 다음 퀘스트다. 버스를 찾아 공항을 나온다. LUNA 버스는 로고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고 행선지도 적혀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이후에 타게 될 버스들보다 비교적 찾기 쉽다. LUNA는 공항과 티라나 중심을 잇는, 한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다. 우리는 아직 버스비를 어떻게 내는지도 모른다. 일단 버스에 앉아 있으면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승객들에게 400유로씩 현금으로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티라나 중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온 것은 공항 외부에 설치되고 있는 특이한 패턴의 장식 벽이다. 언니가 이 공사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지만 어째서인지 가뭄에 콩 나듯 정보가 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게 알바니아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첫 신호탄이었음을.
너너 테레사 공항이라는 이름처럼 테레사 수녀 동상이 공항 근처에 있다. Nënë의 ë가 러시아어에서는 ‘요’로 발음됐는데 여기서는 ‘어’로 발음되나 보다. ‘nurse’나 ‘purse’의 ‘u’처럼 발음된다고 한다.
게으르게 여행 준비를 하며 스쳐 지나갔던 도시 이름들이 표지판에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그 도시들이 갑자기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와서 이제 만질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있음을 실감한다.
오후 5시 버스는 어느새 만차가 되어서 운전사 아저씨는 더 들어오려는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공항을 떠나는 길에도 버스를 놓친 사람들이 한을 담아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지만 버스 문은 열리지 않는다. 뽕짝 음악이 버스 안을 채우자 내가 탄 것이 알바니아의 버스인지 한국의 고속버스인지 분간할 수 없어진다. 톨게이트를 지나고 막힐 듯 막히지 않는 도로들을 지난다. 창 밖 풍경들이 계속해서 우리나라와 겹쳐진다. 저 익숙한 색 조합의 주유소와 버거킹 드라이브 스루 간판을 보라.
친밀감 와중에 이국적임도 느껴졌는지, 언젠가 본 이름 모를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독립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도 든다. 앞으로 며칠 동안 걸어다니게 될 도시의 중심에 들어오자 온몸으로 신호를 알리는 신호등과 표지판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끈다.
티라나에 있는 STOP표지판의 대부분에 ‘I’ll Never’—STOP—‘Loving you’ 가 쓰여 있어서 처음에는 프린트인 줄 착각한다.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 몇 분 동안 이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형성된다. 그 가운데에는 푸릇푸릇한 활엽수들, 도시 전체에 은은하게 깔린 향기를 내뿜는 꽃들, 붉은기가 도는 돌로 만들어진 이상한 형태의 공공 조형물들이 있다. 붉은색 돌로 된 무언가들은 티라나의 곳곳에 옹기종기 앉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좀 더 걷다 보니 도너 케밥의 고기처럼 매달려 있는 접힌 파라솔과 모스크, 스칸데르베그 광장이 있다. 광장의 이름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이끌었던 알바니아 군사령관 스칸데르베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명지들이 서로 가까이 모여 있어서 조금 걷다 보면 구글맵에 저장해 놓은 곳이 나오고, 좀 더 걷다 보면 또 다른 저장해 놓은 곳이 나오고 한다. 옆의 큰 역사박물관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Et’hem Bey Mosque
모스크 안에 들어가려면 여자는 머리와 팔다리 피부를 감춰야 한다. 나는 옷에 후드가 있어서 그걸 쓰면 된다고 한다. 내부는 화려하다. 이후에 내가 가게 될 더 큰 모스크가 지어지기 전에는 이 작은 모스크가 티라나에서 가장 큰 모스크였고, 그래서 이슬람 명절마다 기도하러 온 사람들로 미어터졌다고 한다.
The Cloud
더 클라우드. 유리로 된 발 받침대가 있어 올라갈 수 있다. 아마 여기 올라가는 사람은 관광객밖에 없겠지? 이름처럼 구름을 상징하는 듯한 둥그런 쟁반들이 있다. 눈에 잘 띄는 도시 한복판에 있는 주제에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왜 만들었는지 같은 설명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냥 ‘더 클라우드’일 뿐이다. 그 당돌함이 마음에 든다.
거리에서는 이웃나라인 북마케도니아 국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알고 보니 4월 23일부터 30일까지가 ‘마케도니아 문화 주간’이었어서 마케도니아 국기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도시를 작은 강이 가로지른다. 이 강을 꽤 많이도 넘나들었고, 나중에는 방향을 잡는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 근처의 한 호텔 건물이다.
로터리의 동상과 하늘이 멋있어서 찍어준다.
Era Vila
Era Vila 식당에 들어간다. 가격은 독일에 비해 싸지만 그렇다고 엄청 싸진 않다. 세 메뉴를 시켜서 둘이 나눠 먹기로 한다.
메뉴판 맨 첫 장에 쓰여 있는 슬로건은 ‘Return into Tradition, In a Modern Era’이다. 알바니아 전통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앉아 웃고 대화하는 저녁 테이블 ‘Sofra’의 정수를 담았다 이런 얘기가 쓰여 있다.
맥주 이름인 코르차는 알바니아의 지역명이다. 과일 향이 나는 에일 같다.
시금치 샐러드와 스파게티다. 시금치 샐러드 양이 넉넉해서 푹푹 퍼서 먹는다. 스파게티는 면에서 고기와 불 향이 진하게 난다.
캐서롤에 든 고기는 부드럽고 결대로 찢어진다. 국물도 맛있어서 식전빵을 열심히 찍어 먹는다. 메뉴판에 전통 음식 코너가 있는데 이게 그 코너에 있었던 요리다. 며칠 후 북마케도니아에서 다시 티라나로 돌아와 알바니아 전통 고기수프를 먹었는데 그것과 확실히 비슷한 느낌.
날이 어두워지자 조명을 갖다주신다.
Tirana Park
물가가 저렴하다는 말에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을 조금씩 다 먹어보자는 계획을 갖는다. 소화시키고 2차 저녁을 먹기 위해 티라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 인공호수가 있는 공원이다. 내가 사는 동네와 경관이 비슷해서 동네 공원에 산책 나온 듯 편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있다. 독일은 대체 뭐였을까?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이 홀로코스트에 잡아먹혔다 — 독일 정부와 조력자들에 의한 유럽 유대인들의 파괴. 독일에 범죄나 위협을 하지 않았는데 유대인은 인종 때문에 몰아내졌고 잔인하게 대해졌고 살해당했다.
독일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했을 때, 알바니아의 사람들은 알바니아의 유대인 시민과 난민을 색출하라는 독일의 요구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했다. 베사 법전은 존중되었고, 보호를 구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적용되었다. 알바니아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은 죽음의 위험에도 유대인들을 보호했다.
이 기념비는 유럽의 살해당한 6백만 명의 유대인과, 세상이 그러지 않을 때 사심 없이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했던 알바니아 시민들을 위한 것이다.
베사 Besa는 알바니아어로 ‘약속’과 ‘신뢰’를 뜻한다. 일종의 관습법인 듯한 베사 법전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알바니아의 유대인 커뮤니티를 보호했다. 알바니아가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동안에도 알바니아의 유대인 인구는 증가했다. 몇몇 유대인은 알바니아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으며 베를린의 알바니아 대사관은 전쟁 동안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유일한 유럽 대사관이었다. 1
Pagus
2차 저녁식사를 위해 Pagus에 간다. 벽에 붙은 티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주변국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우리나라 뉴스라면 일본, 중국, 미국이 나올 텐데 여기는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코소보가 나온다.
배가 안 꺼져서 스테이크 한 점과 음료만 시킨다. 나는 목이 말라 맥주 500ml를 시켜서 꿀꺽꿀꺽 마신다. 고기는 몇 점만 떼어 먹는다. 미디움 레어여서 육회 느낌이다. 칼 모양이 신기하다.
Budget Retreat Tirana & Studios
사실 낮에 호스텔에 짐 놓으러 왔었는데 리셉션에 사람이 없고 전화, 문자 답도 없어서 아무 방에나 가방을 던져놓고 열쇠를 가지고 나와서 돌아다녔었다. 다행히 저녁에 스태프가 와서 우리가 돌아오면 방을 원래 방으로 바꿔 주겠다고 한다. 고기를 먹고 후다닥 와서 결제하고 무사히 들어온다.
가격에 비해 넓고 좋아서 만족하며 뒹굴거린다. 나는 해외에 오면 그 나라 언어를 전혀 못 알아들어도 뉴스를 틀어놓고 멍 때리며 바라보는 걸 좋아해서 텔레비전을 튼다. 영화나 드라마는 있는데 방송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뉴스는 못 본다. 스포티파이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의 계정이 연결되어 있다.
이곳의 딱 한 가지 흠은 온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았던 찬물샤워를 한다. 욕하면서 물을 맞았지만 막상 하고 나오니 상쾌하고 좋다. 거의 눕자마자 잠에 든다.
Footnotes
-
Karcic, H. (2023, April 12). Albania to Honour Heroes Who Saved Jews from Holocaust. Balkan Insight. https://balkaninsight.com/2023/04/12/albania-to-honour-heroes-who-saved-jews-from-holocau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