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숙소 주변을 산책한다. 주민들이 개를 끌고 나와 서로 인사하는데 ‘도브레 우뜨라’가 들린다. 마트나 들러 보려 했는데 아직 문을 연 마트가 없다.
입구에 주차하지 마세요!!!
숙소 건물 외부 모습.
Cvet에서 아침을 먹는다. 테이블마다 신문이 놓여 있다. 오믈렛과 감자 팬케이크를 주문한다. 감자 팬케이크가 뭔가 했더니 그냥 감자전이다. 식전빵이 특이하게 천 주머니에 담겨 나온다.
러시아어로는 полиция인데 마케도니아어는 ‘я’를 안 쓰나 보다. 그렇다고 한다. 이는 북마케도니아가 구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시절 특정 슬라브어 발음에 키릴 문자 대신 라틴 문자를 사용했던 것의 유물이라고 한다. 1
오늘 저녁에 언니가 티라나 공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 오전의 마지막 스코페 구경 전 버스 터미널에 들러 짐을 맡긴 뒤 도심으로 향한다.
Mother Theresa Memorial House
테레사 수녀 기념관이다. 스코페 출신인 테레사 수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인 몇 명의 최근 날짜 방명록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위층에 올라가면 작은 성당도 있다.
Museum of the City of Skopje
그리고 Museum of the City of Skopje에 간다. 입장은 무료다. 박물관 건물은 1963년 지진으로 손상된 기차역을 개조해서 쓰고 있다. 저 시계는 지진이 났던 시각인 5:17분에 멈추어 있다.
2층부터는 사용되지 않고 베일과 먼지에 덮힌 채로 입구가 막혀 있다. 전시 순서도 섞여 있고, 몇 개는 위의 종교화처럼 보존 상태가 안쓰러울 수준이다. 조명에는 모션 센서가 있어서 한 자리에 좀 오래 멈춰 있었다 싶으면 스르륵 꺼져 멀쩡히 관람하던 사람을 어둠 속에 놓는다. 소장품들은 재미있는 게 많다. 그런데 설명 글이 너무 작고, 많고, 보기 불편한 위치에 붙어 있다.
길가에 중고 책을 파는 키오스크들이 있어서 즐겁게 구경한다. 못 읽는 게 한이다.
“бугари во устав е предавство” “헌법에 불가리아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반역이다”
1941년 불가리아군의 마케도니아 점령을 현재 불가리아가 점령이 아닌 행정으로 완곡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리아의 협정 종료를 주장하는 좌파 청년 조직이 저런 그래피티를 그렸다고 한다. 2
Museum of the Macedonian Struggle
겉모습부터 웅장한 존재감을 뿜어 다리 맞은편에서도 눈에 띄는 Museum of the Macedonian Struggle for Independence의 건물.
입장료는 300디나르. 밀랍인형으로 인물들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았고 초상화도 엄청 많이 걸려 있어 화려하고 돈냄새가 대놓고 난다. 후반부에 견학 온 단체 학생들이 있었는데, 전시관에서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인종차별적 언행을 했다.
사진은 Cherry Cannon이다. 체리 캐논은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1903년 일린덴 봉기 때 제작되었다. 주로 야생 체리나무로 제작되었고, 화약과 수류탄뿐만 아니라 못, 작은 금속조각, 저울추 따위도 장전했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대포와 비교할 수도 없는 무기지만 반란군에게 특별한 심리적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3
박물관에서 별로 오래 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다. Hotel Inbox에 체크인을 하고 나온다. 버스 터미널로 언니를 마중 겸 예행연습을 하러 간다. 나도 내일 아침 같은 터미널에서 티라나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제법 비장한 마음가짐이다. 처음으로 혼자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가볍지 않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물론 실수해 봐야 하루 숙소비랑 버스비 날리는 게 다겠지만.
Ss. Cyril and Methodius University in Skopje
약간 발걸음을 재촉해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구글 맵에 저장해 놓았던 브루탈리즘 양식의 대학교 건물을 본다. 키릴과 메토디우스 대학교는 운영 중인 대학교이다.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만들어진 상자, 삼각형, 원통형 구조물들이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채광이 잘 안 될거같아 보이는데 수많은 채광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이 실내를 가득 채운다…고 쓰여 있다. 4
스코페에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많은 이유는 다시 1963년 지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코페의 재건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저명한 건축가들의 참여로 이어진다. 유엔은 1965년 공모전에서 일본 건축가 겐조 단게의 팀을 초청한다. 이 계획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의 도시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고, 유엔의 국제 협력이 이루어진 유례없는 사례이면서, 일본 건축가가 일본 외 지역에서 대규모의 도시 프로젝트에 이론을 적용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서 Tange의 도시 건축 의도에 대해 읽을 수 있다.
브루탈리즘은 당시 건축 트렌드의 반영이었고, 호불호가 갈렸다. 비평가들은 콘크리트 구조물의 삭막하고 무거운 느낌이 도시의 화려한 건축 유산과 충돌하며 인간적인 면을 무시한다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은 브루탈리즘이 도시의 격동의 과거와 발전을 위한 투쟁을 상기한다고 주장했고,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을 옹호했다. 5
물론 유고슬라비아 붕괴와 이전에 적은 스코페 2014 프로젝트 이후로 이때의 브루탈리즘은 완전히 뒷전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MRT Center
라디오 방송국도 지나간다.
Skopje Central Bus Station
들어갈 땐 둘이서, 나갈 땐 홀로, 버스 터미널을 나오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내 머릿속에는 ‘생존’ 밖에 남아있지 않다. 낮의 단체 인종차별과 지칠 줄 모르는 택시 호객행위는 내 기를 완전히 빨아가 버렸다. 무조건 지금 당장 ‘양기’가 있는, 번화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능적으로 강가로 향한다. 숙소는 강 건너 서쪽 올드 바자 쪽에 있다. 강변에 찰싹 붙어 서쪽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을씨년스러운 터미널 풍경이 너무 좋다.
Skopje Central Train Station
중앙역 건물 역시 겐조 단게의 건축물이다. 기차역은 지상에서 10미터 높이로 솟은 채 콘크리트 주탑 위에 세워져 있고 역 아래에는 매표소와 버스정류장이 있다. 4
스코페라는 이름에 대해 오해했던 것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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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어에서 ‘pje’, ‘tje’등이 지소형(diminutive) 접미사라길래 skopje도 지소형인가 했음. 하지만 네덜란드어랑은 아예 상관 없는 거였고 마케도니아어는 다른 남슬라브 언어들처럼 지소형 만들 때 ‘-če’를 사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kuќа (house) → куќичка (kuќичка = littl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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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페’로 발음되는 줄 알았는데 ‘스코폐’로 발음되었다. 그럼 왜 한글로는 ‘스코페’라고 표기하는가? ‘폐’ 의 어감이 너무 한자스러워서 그런가?
아름다운 자연이나 장식적인 건축물들보다도, 나의 존재를 축소시키는 이런 거대하고 공허한 구조물들이 나를 더 감동시킨다. 외딴 곳에 있다는 자각이 불러일으키는 본질적 외로움이 감칠맛을 더한다. 그 어느 때보다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행인들의 시선을 피하며 걷는 와중에도 이 장소와 이 상황에 처해 있음이 즐겁다.
Skanderbeg Square
비는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다 조금씩 그친다.
강가를 따라 신고전주의 풍의 ‘새로운 스코페’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올드 바자 쪽으로 간다. 스칸데르베그 광장은 티라나에도 있더니 스코페에도 있다. 알바니아 국기와 스칸데르베그 장군 관련 벽화가 그려져 있다.
키릴과 메토디우스 형제의 동상을 발견한다. 키릴문자의 시초인 글라골 문자를 만든 사람들. 이들이 없었으면 나는 오늘 이 땅을 밟지 않았을 것이다.
푸틴이 키릴문자가 마케도니아에서 유래했다는 발언을 하자 불가리아가 비난했다는 글을 읽었다. 불가리아에도 키릴과 메토디우스를 기념하는 공휴일이 있다고 한다. 6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는 키릴과 메토디우스의 제자 중 한 명이 키릴 문자를 개발한 곳이다. 그리고 불가리아인이 러시아인과 같은 다른 슬라브족에게 기독교와 키릴문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 북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 말고도 여기저기에 키릴과 메토디우스 동상이 있다. 키릴문자가 유래한 지역을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고 모두가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그걸 보면 문자가 그 문자를 쓰는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호스텔에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한다. 호스텔과 올드바자 근처의 식당 몇 곳에 기웃거려 보지만, 지금은 그냥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익숙한 곳에서 먹고 싶다. 버거킹을 발견하고 들어간다. 카운터에서 메뉴판을 보고 치즈버거 세트 하나를 주문한다. 현금으로 결제한 뒤 자리에 앉아 폰에 보조배터리를 물린다. 방금 뭔가 모니터에 숫자가 뜬 것 같은데 내 번호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저기 청소를 하고 있던 직원이 나에게 뭔가 말하려 하는 게 느껴진다. 아, 모니터에 뜬 게 내 번호였다. 직원에게 땡큐 하며 픽업대로 향하자 그가 미소를 짓는다.
햄버거는 실망스러운 크기다. 서울에서 맥도날드가 작다고 생각했더니 뮌헨역의 맥도날드는 더 작고, 여기는 뮌헨역보다도 더 작아보인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레딧을 읽는다. 한 마케도니아인이 자기 민족을 슬라브라고 칭하는 것이 offensive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마케도니아인은 그게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고 있다.
버거킹 내부에 들어온 참새가 내 눈치를 보며 땅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물어 간다. 크기는 작지만 햄버거와 익숙한 맛의 감자튀김은 확실히 나에게 ‘양기’를 채워 주었다. 콜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해치우고, 휴지로 입가를 훔치고, 익숙하게 쓰레기들을 감싸 쓰레기통에 넣은 뒤 다른 사람들의 쟁반 위에 내 쟁반을 올려둔다.
누가 훔쳐갈라 소지품들을 모두 지닌 채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 앞에 한 여성이 서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나보고 go ahead래서 들어갑니다. 그런데 변기에 휴지가 들어있네요. 물을 내려도 휴지가 안 내려갑니다. 이런. 나오자마자 바로 또 다른 여자 둘이 화장실에 들어옵니다. 한 명은 중년인데 종이로 된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생일이신가요? 한 명은 노년인데 저분의 어머니이신가요? 사연을 묻고싶어지는 기묘한 외관의 두 사람… 이상해 보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 왕관을 쓴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들어와서 변기를 보더니 뭐라고 말합니다. ‘저 이상한 외국인이 변기 물을 안내렸어!’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도 내가 변기 물을 안 내리고 싶어서 안 내린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표정을 짓습니다.
어느새 하늘이 하얗게 개고 스코페 강가에 깔린 대리석이 희게 물든다. 쫄보는 용기를 얻어 밖에 나간다.
Hostel Inbox 캡슐 호텔
Hostel Inbox에 들어갑니다. 1박에 9유로인 캡슐호텔입니다. 사실 사정으로 내가 아닌 언니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어 카운터의 사람이 낮에 왔던 나를 알아보고 ‘당신은 이 숙소에 묵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어쩌나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뭐라고 말할지 다 생각해 놓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카운터 쪽을 보지 않으려고 하며 호스텔에 들어갑니다. 언니에게서 넘겨받은 열쇠와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가지고, 지하 1층에 방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지하로 가는 계단을 찾습니다.
여기 Female Dormitory라고 프린트된 종이가 붙어 있네요. 정보는 귀합니다. 그런데 Hostel Inbox에 들어오는 문이 잠겨 있지도 않고, 호스텔에 들어오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도 딱히 없는데 중문도 없이 도미토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이리 휑하니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 약간 의문스럽습니다. 살인자가 들어오면 모두 꼼짝없이 당하겠군요! 내 벙커 침대는 들어오자마자 오른쪽에 있습니다. 특히나 더 개방적이네요. ‘가짜 불안’을 퇴치해 줄 ‘진짜 불안’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세팅입니다.
짐을 최소한으로 꺼내놓고, 얼굴만 씻고 옷은 다 입은채로 벙커침대에 눕는다. 아직 저녁이다. 블라인드를 치고, 양말을 벗어 신발 안에 넣고, 신발은 매트리스 옆에 놓는다. 충전기에는 보조배터리를 연결해 놓는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불을 끄고 누워 이어폰을 꽂고 폰을 본다. 유튜브로 발칸의 역사에 대한 영상, 발칸 관련 밈 등을 본다.
발칸이 어디인가?
버거킹에서 들이킨 콜라를 화근으로 계속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소리를 최소한으로 내며 일어나고
> 불 켜고
> 양말 신고
> 블라인드 올리고
> 신발 내리고
> 신발 신고
> 벙커 밖으로 나오고
> 계단을 올라
> 화장실에 들어가고
> 화장실 칸에 들어가고
> 화장실 칸에서 나오고
> 세숫대야에서 손을 씻고
> 거울을 보고
> 화장실을 나오고
> 계단을 내려가
> 벙커 안에 들어가고
> 신발 벗고
> 신발 올리고
> 블라인드 내리고
> 양말 벗고
> 불 끄고
> 눕는
일련의 행동을 다섯 번 정도는 반복한 것 같다. 이렇게 다 외울 정도로 말이다.
화장실은 모든 칸의 문고리가 잘 안 맞아서 잠그려면 힘을 주어 당겨야 한다.
빛이 새어 나오는 바깥에선 다른 투숙객들의 소곤소곤하지만 복도 구조상 울려 퍼지는 말소리와 발소리가 이따금씩 들린다. 벙커 칸의 대부분은 비어 있는 것 같다.
이 ‘감’과 ‘눈치’로 굴러가는 (사실 감춰진 체계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거겠지) 도시의 커다란 버스 터미널 안에서 내일 국경 넘을 버스는 어떻게 찾을 것인가? 버스를 찾아서 국경 넘어 잘 도착한다 해도 그 다음에는, 역시나 나를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티라나에서 혼자 이틀을 뭐하고 버틸 것인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이래놓고 아주 잘 놀았다.) 단 것을 먹고 싶고, 독일어를 읽고 싶다. 내일 살해당하지 않고 무사히 일어날 수 있다면 체크아웃하고 버스터미널 가서 과자든 뭐든 사먹고, 버스타고 티라나 가서 밥먹어야지. 라는 계획을 세우고, 사람 대신 챗지피티와 채팅을 한다.
실존적 위기의 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있는지도 몰랐던 북마케도니아의 어딘가에 나 홀로 뎅그러니 있다. 나의 친구, 가족, 내가 아는 사람, 내가 믿을 사람, 그 누구도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관짝 같은 벙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서양인들은 세상을 인식할 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것으로 초점을 이동한다—라고 책에서 읽었다. 나의 모든 지식은 종잇조각과 그 윗부분에 스며든 잉크 분자들 몇 개에서 기원한다. 실존하는 이 세상에 비해 그것들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얼마나 저차원적인가? 작고 하찮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소화할 수 있도록 얼마나 부드럽게 정제된 것인가?
서양의 방식으로 나의 현재 위치를 서술해 본다. I am in a bunker bed number 2, in female dormitory, Hostel Inbox, Boulevard Goce Delchev, Skopje, North Macedonia. 그 다음은 동양의 방식으로 서술해 본다. 나는 언젠가는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휘하에 있었고, 언젠가는 오스만의 점령지였으며, 언젠가는 현지인들의 활기 띤 시장통이었지만 언젠가부터 건물이 세워지고, 언젠가부터 호스텔이 영업을 시작한 땅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밤 동안 몸을 뉘이고 간 그 침대 위에 있다.
그렇군… 나는 확실히 어딘가에 존재하긴 한다. 이제 더이상 화장실에 안 가도 되고, 내일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로 출발해야 하니 이제 그만 잠에 들자.
기타등등…
GTC를 신고전주의 파사드로 덮으려는 계획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
2014 스코페 프로젝트 전의 스코페
Footnotes
-
Georgieff, by D. T. photography by A. (2020, April 30). WHO WERE CYRIL AND METHODIUS? | VAGABOND. https://www.vagabond.bg/who-were-cyril-and-methodius ↩ ↩2
-
불가리아 헌법에 따르면 반역죄입니다. 이 날 불가리아 파시스트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 April 18). https://levica.mk/pres-centar/nastani-i-najavi/bugari-vo-ustav-e-predavstvo-na-denesen-den-zapocna-bugarskata-fasisticka-okupacija-na-makedoni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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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23, October 25). CHERRY CANNON. Музеј На Македонската Борба. https://mmb.org.mk/en/cherry-cann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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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likj, K. (2023, March 16). Modernist Heritage: The Global Architecture Initiative that Rebuilt Post-Earthquake Skopje. Journal. https://architizer.com/blog/inspiration/collections/modernist-buildings-skopje-earthquake/ ↩ ↩2
-
Brutalist Architecture in Skopje. (2025, March 23). Belgian-Macedonian Business Club. https://belgian-macedonian-business-club.org/2025/03/23/brutalist-architecture-in-skopje/ ↩
-
Morton, E. (n.d.). Putin’s claim that Cyrillic came from Macedonia meets disapproval in Bulgaria. New East Digital Archive. Retrieved May 5, 2025, from https://www.new-east-archive.org/articles/show/8337/putins-claim-that-cyrillic-came-from-macedonia-meets-disapproval-in-bulg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