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대수 수업이 나에게 남긴 것은 의외로… 그다지 수학적이지 않은 망상들이다
존재하는 것이 고유할 수 있는가?
그림을 많이 그리던 시기, 창작을 할 때 존재하는 무언가를 닮게 하고 싶은 열망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곤 했다. 하지만 singular number는 0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고유할 수 없다.
나에게서 ‘전혀 나같지 않은’ 생각이 나올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나에게서 나온 벡터는 필연적으로 나의 벡터스페이스에 속한다. 그걸 벗어난 생각이 쌩뚱맞게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읽어서 새로운 벡터를 추가해서 벡터스페이스를 확장해야 한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한 언어로 만들 수 있는 문장들은 문법규칙이라는 벡터들로 이루어진 벡터스페이스다. 영어학개론 수업 듣다가 ‘하나의 구조로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라는 걸 듣고 머리를 스친 생각이다. 언어도 일종의 coordinate system이다, 아니 이 세상 전체가 그렇다. 무수한 좌표축들이 포개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것을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 또한 엄청나게 많은 좌표축이 겹쳐진 것 위의 approximation이다. 개개인은 그중 ‘시간’이라는 좌표축의 플러스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점을 찍어 나간다. 점을 촘촘하게 찍을수록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여행을 하고 경험을 해야 하는 이유
벡터는 어떤 점을 설명할 수 있는 지표가 됨과 동시에 그 자체로도 이동이다. 좌표축이 하나 추가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견주어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늘어난다는 뜻이고, 또한 생각이 뻗을 수 있는 폭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로 좌표축을 많이 추가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내 벡터스페이스 안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생각이지만, 그 궤도에 약간의 힘을 가해 변형할 수 있다면 그게 자유이지 않을까?
그 자유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오감을 느끼는 자유는 넘쳐봐야 다시 속박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이 자유는 바다처럼 정해진 한도가 없지 않은가…